역사의 역사 – 유시민 (2018)

지식 소매상이라고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의 역사서술의 변천사에 대한 글이다. 지식 소매상답게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기원전 최초의 역사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로부터 최근에 인류사로 각광받고 있는 유발 라라리까지 중요한 역사가들이 역사를 쓰는 방식, 관점 등에 대해 비교 분석하여 정리한 책이다.

유시민 작가가 정의하는 역사는 ‘인간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에 관해 문자로 쓴 이야기’다.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가가 생각하는 ‘사실’을 취사 선택해야 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엮어내야 한다. 역가사가 모든 사실을 다 알 수는 없으며, 수집 가능한 사실들 가운데, 역사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므로, 역사에는 그 역사를 쓰는 역사가의 주관성이 내재되어 있다.

사실의 수집, 선택, 선택된 사실들을 이야기로 만드는 상상력과 창의성을 고려하면 역사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다.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다”라고 우아하게 표현했다.

기원전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문명이 발전해도 전쟁과 내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국제전이든 내전이든, 폭력을 동원한 집단적 충돌은 모두 인간의 능력과 사회 조직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 인간의 능력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발전하지만, 사회 조직은 아직 부족 본능에 이끌린다. 인간은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지만 부족본능에 이끌려 보다 낮은 차원에서 서로 싸우게 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런 부족본능은 전 세계에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최근 세계화를 밀어내고 부상하고 있는 ‘민족주의’를 생각하면 유시민의 통찰은 정확하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역사서를 사마천의 ‘사기’로 뽑았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는 하나의 전쟁을 다뤘지만 사마천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 크고 작은 국가의 흥망, 다양한 사회제도의 특성과 변화, 자기만의 색깔로 살다 죽은 개인들의 생애 등을 다뤘다. 몇 명의 조수의 힘을 빌리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이렇게 방대한 작업을 했다고는 믿기지 않은 작업량이다. 이전의 역사서가 저마다 별 하나를 그렸다면 사마천은 우주를 그렸다. ‘사기’는 시대와 문명의 과거를 언어로 재구성한 ‘전체사’였다. 인류역사에서 혼자 힘으로 그런 작업을 해낸 역사가는 오로지 사마천 뿐이었다. 특히 국가와 왕조만 아니라 자주적인 인생을 살다 간 개인의 역사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다른 역사가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유시민 작가는 제5장 ‘역사를 비켜간 마르크스의 역사법칙’에서 마르크스 이론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회가 대립하는 계급의 통일체이고 사회 변화의 동력이 대립하는 계급 사이의 투쟁이라고 할 경우, 계급과 계급의 대립의 폐지는 곧 사회 변화의 동력 소멸을 의미한다. 동력의 변화를 잃으면 사회는 영원히 같은 상태가 지속되는 ‘천년 왕국’이 된다. ….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해도 마르크스의 역사법칙이 진리가 되지는 못한다. 공산주의 혁명 이전의 사회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에는 적용할 수 없다면, 그 역사법칙을 보편적 진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62p

제 7장 에드워드 H 카의 역사가 된 역사 이론서에서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사실은 과거의 것이고 역사가는 현재에 산다. 과거의 사실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과 그 사실들을 일정한 관계로 맺어주는 역할을 하는 해석의 관점은 역사가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 역사가의 경험, 역사가의 이념과 개인적 기질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그래서 사실과 역사가의 상호작용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먼 과거에 대한 것이라도 역사는 현대사일 수밖에 없다. 역사란 오늘을 사는 역사가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란 것이다.’ -235p

이 책에는 기원전 역사가로부터 현재의 역사가까지 중요한 역사가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역사서술의 변천사를 동서양을 망라하여 일목요연하게 분석하고 있어 역사의 역사를 독자가 가늠하기에 매우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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