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백패킹 – 2018.9.8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인 9월 8일 용문산 백운봉으로 향했다.

들머리를 용문산자연휴양림으로 정하고 차를 몰고 갔는데, 입구에 바리케이트가 길을 막고 있었다. 입구를 지키는 청년에게 물어보니, 자연휴양림의 데크나 숙소를 예약한 사람들만 안으로 진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입구 주변에 많은 차들이 주차하고 있어 파킹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차량을 통제하는 젊은 친구에게 산행을 위해 자연휴양림 안에 주차를 부탁했더니 주차료도 받지 않고 흔쾌히 입장시켜 주었다. (착한 젊은이, 복받으시게…) 

적당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을 시작했다. 

용문산자연휴양림에는 아기자기한 숙소들이 많았다. 지은지 얼마 안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외관이 깨끗하고 주변도 깔끔해서 숙소동에 가족들과 함께 오는 것도 괜챦아 보였다.  야영데크도 있을텐데 보이질 않았다.숙소들 뒤편으로 등산로가 아닌 길을 올랐다. ‘무조건 위로 가다보면 길이 나오겠지’라는 낙천적인 생각으로 산행을 했다. 나중에 하산할 때 보니, 내가 초입부에 오른 길은 짐작한대로 등산로가 아니었다.  등산로는 주차장에서 한참 오른쪽에 야영데크들을 지나서 있었다.

용문산은 저번에 올랐던 감악산에 비하면 정비가 너무 잘되어 있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감악산이 수동변속기을 장착한 1톤 트럭이라면, 용문산은 8기통 , 8단 자동변속기를 갖춘 에쿠스에 가까웠다. 올라가는 길 중간중간에 볏짚으로 만든 카펫 같은게 깔려 있어서, 비가 와도 미끄러지지 않고 산행이 가능해 보였다. 

1시가 넘어서 산행을 시작했는데, 내려오는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하는 말이,

“이미 비박하러 4팀 정도 올라갔어요. 올라가도 텐트 칠 자리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올라가면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부부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한쌍의 나이 지긋하신 남녀 중 덩치좋은 남자 분이 헥헥거리면서 나에게 백운봉에 올라가면 자리를 하나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본인은 부인(?)과 함께 가서 올라가는 속도가 느리니, 내가 먼저 도착하면 자리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 핸드폰 번호까지 요구했다.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긴 했지만, ‘뭐 이런 경우가 다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대학교 때 중앙도서관 자리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하고 들어주기도 했지만, 산에 와서 텐트 칠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받기는 처음이었다.

저번에 감악산에서 너무 고생을 많이 했던지라, 용문산은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폭우로 인해 돌들을 무질서하게 토해 놓아서 올라가는 내내 균형잡는 것 조차 힘들었던 감악산이었다. 

용문산 자연휴양림에서 백운봉까지의 거리는 2.7km다. 정상까지의 편도거리로 볼 때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평균에 해당하는 거리다. 

거리가 적당한 편이고 등산로 정비도 잘 되어 있었지만 1,000m 에 가까운 높은 산인지라, 경사가 가파른 곳들이 많이 있어 숨이 많이 차올라 왔다. 

그래도 암릉구간이 없어서 아주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

열심히 오르다 보면 이렇게 헬리포트가 나온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백운봉이다. 저기 정상에 데크가 몇 개 있을 것이다. 위에 4팀이 올라갔더라도, 내 작은 텐트 하나쯤 칠 자리는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텐트를 내려 놓고 목을 축이며 잠깐 쉬었다.

아직 정상이 아닌 중턱인데도, 몽실한 구름들과 저멀리 능선들이 굽어 보인다. 

이제 거의 다왔다. 400m 남았다.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왔어도 이렇게 친절하게 400m 정도 남았다고  알려주면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된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구나… 하면서.

백운봉 정상에 올라오니, 이미 데크는 만원이었다.  3팀이 있었고, 모두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정상석 주변에 데크 이외에는 평평한 곳을 찾기 어려워 텐트 칠 자리가 없었다. 마침 등산오신 어떤 분이 여기서 약 10m만 내려가면 작은텐트 딱 한동 칠 공간이 있다고 해서 백운봉 정상석을 넘어서 조금 내려가니, 작은 텐트 한동을 칠 작은 공간이 보였다. 조망은 정상석이 있는 곳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텐트를 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올라올 때 정상에 사람이 많아 텐트를 칠 수 없을 것이라는 여러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끝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위의 연두색 텐트를 치신 분께 몇시에 도착했냐고 물으니 3시 전후라고 하셨다. 토요일에 안전하게 데크에 텐트를 치기 위해서는 오후 2시이전에는 도착해 있어야할 것 같다.

아까 올라올 때 데크에 자리 맡아달라고 하신 분께 전화를 하니, 힘들어서 백운봉은 포기하고 헬리포트에 텐트를 쳤다고 한다.   

제로그램 텐트를 사용하시는 이 분이 제일 먼저 도착하셨다고 한다. 이자리가 제일 명당인 것 같다. 백운봉에서도 제일 높고, 사방을 다 조망할 수 있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많은 사진들을 찍었다. 사진을 부탁하기도 하고, 조그만 삼각대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스마트폰을 리모컨 삼아 찍기도 했다. 

이 날은 쨍하게 맑은 날은 아니었다. 환상적인 구름도 없었지만 이정도의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해 떨어지기 전에 실컷 사진 찍고, 7성급 호텔이 아닌 지방 소도시 여관같은 비좁은 박지에 텐트를 치다가 일몰을 놓쳐버렸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에도 그 여운들이 남아서 계속 셔터를 눌러댔다.

내 집은 저 아래인데, 해떨어지고 난 뒤의 풍경이 너무 좋아서 한동안 정상석 근처를 떠나지 못했다. 

올라갈 때 짧은 바지를 입고 갔는데, 해떨어지니까 추워서 반바지 차림으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데크를 점령한 다른 분들은 모두  패딩까지 준비해서 따뜻해 보였다. 추위에 서둘로 텐트 안으로 들어가 집에서 싸온 치즈케익을 먹었다. 이날은 산행 겸 케토제닉 다이어트를 한다고 라면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백패킹할 때 항상 고민한다. 라면을 가지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산행 후 정상에서 먹는 라면은 특별하다. 비록 내가 케토제닉 다이어트를 철저히 하고 있더라고, 산 정상에 있을 때 따끈한 라면국물의 유혹을 참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용문산 백운봉에 온 날은 아예 라면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애초에 유혹의 원인을 제거한 것이다. 

멋진 일몰을 놓쳐버린 아쉬움 탓에 내일 일출 시간을 확인 후 알람을 세팅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비좁은 곳에서는 밖에 나와 의자에 앉을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출을 맞을 준비를 한다. 저 멀리서 붉은 기운이 지평선을 채운다. 

드디어 솟아 오르는 해. 용문산 백운봉에서는 서울 경기 인근의 모든 산들이 아래에 있다. 용문산은 지금까지 다녀본 산들 중에서 가장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다음에 날씨 좋을 때 일찍 출발해서 꼭 데크에서 하룻밤을 보내야겠다. 하루 휴가를 내더라도 온전히 이곳을 즐기고 싶다.

해가 점점 높이 떠오르고, 데크를 정복하셨던 부지런한 백패커들은 아침을 먹고 하산 준비를 한다.  나도 짐 정리를 한 후에도 아쉬움에 데크 주변을 서성거렸다. 다른 산 같았으면 일요일을 온전히 집에서 즐기기 위해  일출을 보자마자 서둘러 하산 했을 것이다. 용문산은 그냥 내려가기가 너무 아쉬웠다. 아침 일찍 등산 오신 분에게 사진을 부탁해 본다. 

 

용문산에서 백패킹을 할 때는 다음을 기억해야 한다.

1.인기있는 비박지이므로 무조건 일찍 출발해서 데크를 점령한다. 아무리 늦어도 오후 2시까지는 백운봉에 도착해야 한다.

2.용문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은 원칙적으로 숙소동이나 야영데크를 예약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므로 자가용을 가지고 갈 때 주차를 신경써야 한다. 

3. 백운봉 정상에 데크가 만원이라도 2인용 텐트를 칠만한 공간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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