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유발 하라리 (2018)

유발 하라리의 거시역사 3부작의 마지막편이다. 저번에 접했던 그의 중세 전쟁역사에 대한 책인 ‘대담한 작전’은 읽다가 포기했다. 이전에 즐겁게 잘 읽었던 같은 작가라도 주제가 나의 관심밖에 있는 책이 얼마나 읽기 힘든지 절감했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쉽게 읽을 수 있고, 생각할 내용도 많이 주는 좋은 책들이다. 그의 책을 읽으면 바로 여기, 지금, 나만의 편협한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의 발생과 그 미래까지 그와 함께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는게 좋다. 언제 그런 시간을 가져보겠는가?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거대한 허구인 ‘이야기’로 지구를 정복한 얘기였다면, ‘호모데우스’에서는 이제 기술발전으로 스스로의 신체와 뇌를 재조작할 수 있는 미래의 사피엔스를 그린 내용이었다. 이번 책은 바로 지금 현실의 사피엔스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논의한다. 과거, 미래, 현재, 차후에 나올 그의 책이 어떤 내용이 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3부작으로서의 완결성이 느껴진다.

이 책에서 그가 느끼는 가장 두려운 현실은 편협한 민족주의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발전해서 인간의 정의 자체가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지구 생태계 파괴는 가속화되는데 세계는 다시 편협한 민족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에 트럼프는 한 연설에서 본인을 ‘민족주의자’라고 표현했다. 트럼프가 당선된 것부터 그가 일관되게 행하여온 모든 것이 민족주의에 들어맞는다. 미국에게 민족주의라는게 당최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민에 의한 다인종 국가인 미국이 민족주의를 표방하는게 우습다. 차라리 국가주의라는 표현이 맞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워 쇠락한 러스트밸트의 백인 중하위층을 공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현재에도 지지율 40%를 오르내리며 선전하고 있다. 

’20세기의 주요 운동은 모두 전 인류를 위한 미래 청사진이 있었던 데 반해 도널드 트럼프는 그런 것은 제시하지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다. 그의 주된 메시지는 어떤 지구 차원의 청사진을 만들고 증진하는 것은 미국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 브렉시트 지지자들도 ‘분리된 영국’의 미래를 위한 별다른 계획이 없다-유럽과 세계의 미래는 자신들의 지평을 훨씬 넘는 것이라고 본다. …. 그들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인권, 사회적 책임을 믿는다. 하지만 이런 좋은 생각들도 국경에서는 제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33p

민족주의, 인종주의 등은 그 이전 단일부족이 해결할 수 없는 도전에 직면했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하라리는 진단한다. 

‘예를 들어 수천 년 전 나일강을 따라 살았던 고대 부족들을 보자. 강은 그들의 생명줄이었다. 그것으로 들판에 물을 댔고 교역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은 예측할 수 없는 동맹이었다. 비가 너무 적게 내리면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너무 많이 내리면 강이 범람해 온 마을을 파괴했다. … 강력한 강을 억제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댐을 짓고 수백 킬로미터의 수로를 파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부족들은 점차 하나의 민족으로 합쳤고, 그 힘으로 댐과 수로를 건설하고, 강의 흐름을 조절하고, 흉년에 대비한 곡물 창고를 짓고, 전국에 걸쳐 운송과 연락 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다.’ 173p

냉전기간 중 핵무기의 위협 속에서 민족주의를 넘어선 전 지구적인 (비록 양편으로 갈리긴 했지만) 연합과 공동노력이 진행되었다. 소련연방의 와해 후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민족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역한 듯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물간 민족주의가 트럼프로부터 발화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푸틴은 소련연방 와해 후에 우크라이나를 침략해서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병합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트럼프는 보호주의 무역정책을 강화하고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리며 전 세계를 경제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전지구적인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까? 매우 절망적인 상황일 수 밖에 없다.

하라리는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의 유대교를 비롯해 기독교, 이슬람교 등 유일신 신앙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나마 불교에 후한 점수를 준다.

“유일신교는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개선하는 데 별로 기여한 게 없다. 단지 힌두교도는 여러 신을 믿는 반면 무슬림은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무슬림이 힌두교도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유일신교가 한 가지 확실하게 했던 일은, 사람들을 이전보다 훨씬 더 편협하게 만들어 종교적 처형과 성전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한 것이다. 다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신을 섬기고 다양한 의식과 의례를 수행하는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일신교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이야말로 유일한 신이며 이 신은 보편적인 복종을 요구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세계로 확산될 때마다 십자군과 지하드, 종교재판과 종교적 차별도 함께 늘어났다.” -287p

“도덕의 의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행동하기 위해 어떤 신화나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 고통을 깊이 헤아리는 능력을 기르기만 하면 된다. 어떤 행동이 어떻게 해서 자신이나 남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낳는지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고 물건을 훔치는 것은 그런 행동이 초래하는 불행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심지어 자신에게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에는 아랑곳없이 당장의 정욕이나 탐욕을 채우는 데만 집착한다.”-301p

“부처는 우주의 세 가지 기본 현실을 설파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지속적인 본질이란 없으며,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도 없다. 우리는 몸과 마음, 은하계의 가장 먼 곳까지 탐사할 수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본질을 지닌 것,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킬 것은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고통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음미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람들은 어딘가에 어떤 영원한 본질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서 연결만 하면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 영원한 본질은 때로는 신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국가, 때로는 영혼, 때로는 진정한 자아, 때로는 진실한 사랑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예정된 실패에 따른 실망과 참담함도 커진다…..

부처에 따르면, 생에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집착과 공허한 현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되는 고통에서 해방되면 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람들의 물음에 부처는 이렇게 조언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절대로 아무것도.” 모든 문제는 우리가 끊임없이 뭔가를 하려는 데 있다. 꼭 신체의 차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눈을 감은 채 몇 시간 동안 부동자세로 앉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신의 수준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와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를 얻느라 극도로 분주하다. 진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459p

종교가 편협한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전지구차원의 위협을 극복할 도구로서도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는, 특히 유일신 사상의 종교는 전지구적 위협극복은 커녕 오히려 지역적 분쟁을 촉발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많다. 

하라리는 마지막 장인 ‘명상’에서 촛점을 ‘나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는 24세때 처음 시작한 명상에서 많을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고통의 가장 깊은 원천은 나 자신의 정신 패턴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뭔가를 바라는데 그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 내 정신은 고통을 일으키는 것으로 반응한다. 고통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조건이 아니다. 나 자신의 정신이 일의키는 정신적 반응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더한 고통의 발생을 그치는 첫걸음이다.” -473p

결국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개개인에게 맡겨져야 걸까? 개개인들이 어떤 철학적 깨달음을 얻어 정치를 바꾸고, 각국가가 연합하여 전지구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정말 요원한 일일 것 같다. 그러므로 지구의 미래는 너무나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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