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신혼여행 – 장강명 (2016)

에세이는 작가의 생각이나 생활의 면면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점이 좋다. 나는 장강명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그의 건조한 문체도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소설가 장강명이 나와 비슷한 면들이 많다는 것. 그러나 나보다 조금 더 급진적이고 실행력이 뛰어나다. 예를 들면 명절에 와이프는 시댁에 가지 않고 본인만 가는 거라든지, 결혼식을 하지 않고 혼인신고로 끝낸 것, 사이가 안좋은 와이프와 어머니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굳이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등등.  장강명은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에서 한번 점검하고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폐기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나는 생각만 그와 비슷하고 실행력은 한참 떨어진다. 그와 같은 실행력을 가졌으면 이미 명절에는 고향에 가지 않고 여행이나 가고 있었겠지? 

-책속의 중요한 문장들

*명절이 싫다는 아내를 자기 부모님 댁으로 굳이 데리고 가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걸까. 보기 싫은 친지들을 만나러 큰집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해마다 명절이 지나면 이혼상담이 급증하고 형제간 폭행으로 누군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꼭 나오는데, 다들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친지들을 만나는 걸까.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뭔지 정확하게 모를 것이다. 그냥 막연히 명절에는 가족이 다 모여야 한다고 하니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뭔지 알지만, 관습의 압력에 맞설 용기가 없다. -29p

*자식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신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부모들을 이해한다. 그런 폭력의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위험에 빠지는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다. 그들은 안락한 감옥을 만들어 자식을 그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과보호.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식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하는 순간부터 어른이 된다. 그러지 못하는 인간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37p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이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세대가 미친 짓거리의 뼈대를 세우고, 신세대가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을 “개 원래 좀 특이하쟎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미친 짓거리는 온 사회 구성원이 거기에 협조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점점 더 강화될 뿐이다. 사교육이나 학벌 같은 문제가 그렇다. 언제나 더 똑똑하고 더 진보적인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앞 세대보다 더 미쳐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관습과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편견과 새로운 속박을 만들어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명문대와 똥통대’라는 기준을 세웠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거기에 ‘인서울’,’수도권’,’지방대’라는 기준을 추가했다. -49p

*그런데 왜 학벌이나 결혼 문제는, 그 부조리에 대해 ” X나 까세요” 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아마 정체성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인들이 정신적으로 허약해서라고 생각한다.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해 뚜렷한 믿음이 없기에 정체성을 사회적 지위에서 찾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는 대학 간판이나 자식 결혼식장에 모인 하객 수로 구체화된다. -50p

*굉장히 물행한 상황에 빠져서도, 내게 남은 미래는 오로지 고통과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인간은 삶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순교자들은 내세를 믿었기 때문에 예외라 쳐도, 스스로 불행과 죽음을 택한 많은 혁명가와 예술가들이 있다.-85p

*한 인간이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외부 환경이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몇몇 성인과 초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물질세계에 형편없이 휘둘린다. 부자 나라의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행복하고 심지어 선량한 삶을 살 기회를 보다 많이 갖게 되지만,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면 영적으로도 황폐한 인생을 살 가능성이 커진다. 포로수용소에 포로 9,999명과 함께 갇혔는데 식량이 천 명분밖에 없으면 나 역시 악마가 되어 동료의 시신을 뜯어먹기 위해 치고 받으며 싸우게 될 것이다. -103p

* 이 체념은 ‘그 거대한 불의’도 내 한 몸의 탄수화물 부족을 이기지 못한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1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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