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사람, 하정우 – 하정우 (2018)

배우이자, 감독, 미술가, 작가인 하정우의 에세이집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전체적인 생각은 ‘하정우는 참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제목처럼 그는 걷기를 좋아한다. 집착이라고 해야할까? 매일 틈만 나면 걷는다. 혼자서도 걷고 친구들과도 걷는다. 손목에 fitbit을 차고 걸음 수를 헤아리면서. 하루 만보는 기본인 것 같고 작정하고 친구들과 10만보를 걷기도 한다.  여러가지 일들 동시에 하면서 무척이나 바쁜 그도 이렇게 틈만 나면 걷는걸 보면, 확실히 시간없어서 운동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나는 하루에 몇걸음이나 걷고 있을까? 3,000보 쯤? 

‘이 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는 것.’ -8p

그의 걷기 사랑은 한 시상식에서 어떨결에 내뱉은 대국민 약속 때문이었다.

“제가 상을 받게 된다면, 그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 길에 오르겠습니다.”

그렇게 그의 걷기인생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는 걷기 예찬론자로 이 책을 읽은 누구라도 걸어보고 싶게 만든다. 

‘만약 나쁜 기분에 사로잡혀서 지금 당장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면 그저 나가서 슬슬 걸어보자. 골백번 생각하며 고민의 무게를 늘리고 나쁜 기분의 밀도를 높이는 대신에 그냥 나가서 삼십 분이라도 걷고 들어오는 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기분 모드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34p

나도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그냥 나가서 걷고 오면 생각이 정리되거나, 정리되지 않더라도 마음이 안정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걸을 때 발바닥에서 허벅지까지 전해지는 단단한 땅의 질감을 좋아한다. 내가 외부의 힘에 의해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리듯 쿵쿵 딛고 걸어가는 게 좋다’ -43p

살면서 주변의 힘에 의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단순한 행동인 ‘걷기’는 이렇게 나의 자존감을 높여 준다.

걷기 예찬론자 답게 자기 몸의 적정 체중을 걷기와 연관지어서 생각한다.

‘걸을 때 하중이 거의 없이 가뿐한 상태, 이것이 내가 유지해야할 최적의 몸무게다’ -43p 

 

하정우는 때때로 하와이에 걷기 위해서 간다. 그냥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걷기’ 위해서 하와이에 의식적으로 간다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4박 6일 동안 하와이에서 오로지 걷기만 한다.  한가지 행위에 이렇게 천착한 결과 그는 걷기 예찬론자이자 전문가가 되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되는 걷기가 이렇게 심오하고 철학적인 인생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내 인생 마지막 4박 6일이라 생각하고 떠났던 하와이에서 나는 온종일 걸었다. 걷고 먹는 일 외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미친 일정으로 다녀온 하와이는 내게 미치도록 좋은 휴식의 기억으로 남았다.’ -53p

‘정작 일은 너무나 열심히 하는데 휴식 시간에는 아무런 계획도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대로 던져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치고 피로한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곧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기’는 결과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피로를 잠시 방에 풀어두었다가 그대로 짊어지고 나가는 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휴식을 취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적어도 일할 때만큼은 공들여서 내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하지 않을까? ‘ -58p

‘이것은 꼭 걷기에 관한 얘기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유난히 힘든 날이 오면 우리는 갑자기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의미 없다’ 사실 처음부터 다 잘못됐던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 어쩌면 고통의 한복판에 서 있던 그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헤맨 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 79p

이쯤되면 하정우는 걷기 철학자로 느껴진다. 

‘내 컨디션이 좋고 여러 조건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 때 비로소 걷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내가 정말 바닥을 기는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 관성처럼, 습관처럼 걷기 위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 -158p

뭔가를 하기 위해서 완벽한 주변 상황을 기대한다면 결코 그 일을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완벽한 상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일단 부족한 상황에서라도 한 걸음 떼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겐 일상의 루틴이 닻의 기능을 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매일 꾸준히 지켜온 루틴을 반복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165p

‘보통  ‘노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능한 한 많은 시간과 자원을 들여서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모습이 상상된다. 하지만 노력은 그 방향과 방법을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다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노력의 방향과 방법을 아는 감독이었고, 노력의 밀도를 높임으로써 모든 작품에 자신만의 인장을 새겨 넣었다.’ -283p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기와 절망 속에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때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노력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모른 채 힘든 시간을 그저 견디고만 있는 것을 노력이라 착각하진 않는지 가늠해 본다. ‘ -285p

이 책을 읽고 ‘인간 하정우’가 참 멋진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깊고 배울 점이 많다. 그는 바르고 성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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