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마 – 가즈오 이시구로 (2005)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성장한 일본계 영국인으로 201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복제인간에 대한 내용으로 80년대 혹은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복제인간의 운명이란 몇 차례의 장기 기증과 이에 따른 죽음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을 증명하면 3년간의 유예기간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진정한 사랑과 영혼을 증명하기 위한 예술창작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가설에 지나지 않고, 그들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기증 후 죽어간다. 

소재가 SF적이고 독특하지만, 등장인물들에 대한 미묘한 심리표현이 너무나 훌륭해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의 기복이나 느낌의 순간들이 있다.  그런 미묘한 부분들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어, 책을 읽고 나면 음.. 역시 노벨 문학상을 받을 만하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는 장기적출 따위는 당하진 않지만..(실제로 그런 험한 꼴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작가는 복제인간을 빌어서, 우리도 우리의 정해진 운명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근원적인 물음과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의식이 있는 존재가 해야할 마땅한 의무이지 않을까?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 초에 접어들자 과학의 약진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졌던지, 사소하고 민감한 문제 같은 건 제기되거나 환기될 여유가 없었단다. 그러다 갑자기 온갖 새로운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졌지. 전에는 불치병으로 간주되던 많은 병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들 말이다. 온 세상이 주목하고 바라던 일이었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인간의 이식용 장기가 밑도 끝도 없이 불쑥 생기는 거라고, 진공실 같은 곳에서 배양되는 거라고 믿고 싶어 했단다. 그래, 그걸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그러니까….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그 때 이르러서야. 그 무렵이 되자 그들은 너희가 어떻게 사육되는지, 너희 같은 존재가 꼭 있었어야 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렵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어. 그 과정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단다. 장기 교체로 암을 치유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어떻게 그 치료를 포기하고 희망 없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겠니? 후퇴라는 건 있을 수 없었지. 사람들은 너희 존재를 거북하게 여겼지만, 그들의 더 큰 관심은 자기 자녀나 배우자, 부모 또는 친구를 암이나 심장병이나 운동 세포 질환에서 구하는 거였단다. 그래서 너희는 아주 오랫동안 어두운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었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지.  그것이 우리의 작은 운동이 시작되기 전의 실상이었단다. 우리가 무엇에 맞서야 했는지 알겠지? 실제로 우리가 시도한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어. 학생들을 장기 공급의 수단으로 여기는 이런 세상에서 말이야.’ -361p

“그러니까 전혀 없는 거군요. 집행 연기 같은 거 말이에요.”

“토미” 나는 나직하게 말하고 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에밀리 선생님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렇단다 토미. 그런 건 없어. 네 삶은 이제 정해진 행로를 따라야 해.” -3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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