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 밀란 쿤데라 (2014)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완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인물들이 나오고, 다소 평범한 일상들이 나열된다. 마치 인형극을 하듯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중간중간에 불쑥 나오는 작가의 목소리도 불편하다.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빌어 스탈린도 등장하는데 역사적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스탈린의 얘기들은 재미있는 면이 있다.

 

어느날 그는 사냥에 나서기로 한다. 오래된 파커를 입고, 스키를 신고, 장총을 들고, 13킬로미터를 누빈다. 그때 눈앞에 나무 위에 앉은 자고새들이 보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새들의 수를 센다. 스물네마리다. 아, 이런 빌어먹을! 탄창을 열두 개 밖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는 총을 쏴 열두 마리를 죽인 다음, 뒤로 돌아 다시 집까지 13킬로미터를 가서 탄창 열두 개를 더 챙긴다. 또 다시 13킬로미터를 가로질러 와서 여전히 같은 나무에 앉아 있던 자고새들 앞에 선다. 그리고 마침내 그 새들을 모두 죽여….

 

이는 스탈린의 농담이었으나, 아무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웃지도 않는다. 오직 후루쇼프만이 대담하게 그것이 진실인지 스탈린에게 묻는다.  스탈린에게 자고새 얘기를 들었던 사람들은 스탈린 앞에서는 아무소리를 못하다가 그들만의 목욕탕에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 댔다.

 

욕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우리는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 댔다. 그의 말은 거짓이었다. 거짓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 딱 하나 믿기지가 않는 건 스탈린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는 거야

 

그리고 스탈린은 그들이 화장실에서 자기 욕을 하는 것을 들으며 미친듯이 웃는다. 스탈린은 이 모든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책의 마지막에 나온다.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 말을 하려고 이렇게 여러 인물들과 별로 인상적라고 할 것도 없는 소소한 일상을 나열한 것일까?  작가가 무얼 얘기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나 내용은 그닥 맘에 들지 않는다. 그나마 소설이 짧아서 다행이다.


2016.5.6 추가.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라는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여기에 내 불만에 대한 답이 있다.

 

하지만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잔뜩 잠재되어 있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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