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

아침부터 백패킹을 간다고 부산을 떨었다. 캠핑가는날이면 부산을 떨 수밖에 없다. 우선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야 한다.  그 지역의 날씨도 점검해야 한다. 코스의 난이도에 따라 짐의 양을 조절해야한다. 게다가 아내의 짐도 내가 싸야한다.

나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는 것을 불운이라고 한다면, 오늘은 완벽히 불운한 날이다.  오늘의 백패킹 장소는 가평 인근의 서리산 잣나무 숲으로 정했다. 휴게소 같은 곳에 들러도 1시간 반 이내에 도착 가능한 장소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자동차 게기판에 TPMS라는 노란 불이 ‘떡’하니 주목을 끈다. 와이프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타이어 공기압에 문제가 생기거나 공기압을 감지하는 센서에 이상이 생기면 뜨는 신호란다. 혹시나 타이어에 못이 박히지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바퀴가 펑크나서 휠이 아스팔트에 부딪혀 불꽃이 튀는 영상이 순식간에 머리속에 떠올랐다. 실제로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다. 가는 도중에 타이어 전문점에 들렀다. 육안으로 살펴본 타이어는 이상이 없었다. 주인아저씨가 타이어에 공기를 채워 주었다. 다행히 주인 아저씨는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 공기를 채우니 TPMS는 사라졌다. 타이어에 공기가 많이 빠진 것 같지 않은데 TPMS가 뜨는 건 좀 이상하다고 아저씨가 말했다. 혹시 TPMS가 또다시 뜨면 바로 AS센터로 가라고 하셨다.

잣나무 숲에 도착해서 그라운드 시트를 깔고 텐트를 펼치는 순간, 불현듯 내가 폴대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분명히 가져오지 않았다. 그때의 서늘한 느낌이란… (아 씨바 좆됐다는 그 서늘한 느낌.) 가끔씩 이런 잣같은 상황을 상상하곤 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현실이 될 줄이야..  짐을 좀 더 가볍게 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타프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타프를 가져오지 않으면 물론 타프관련 폴대도 놔두고 와야한다. 타프의 폴대를 놔두고 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텐트의 폴대도 놔두고 와버렸다. 타프와 폴대는 다른 카테고리인데, 순간적으로 헷갈려 버렸다.

잣나무 숲속에서 간단히 라면 끊여 먹고, 남양에서 나온 루카스 9 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맛없는 라떼를 먹고 철수했다. 철수하는 중간에 아내가 내리막에서 넘어졌다. 절둑거린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발목이 좀, 신경이 상당히 쓰일정도로 불편하단다.

차를 타고 좁은 도로를 내려오다가 쓰레기 버릴 곳이 마땅치 않아 새로 분양하는 타운하우스의 쓰레기통에 약간의 쓰레기를 버렸다. 차로 돌아오는 순간 누군가 나를 불렀다.  왜 거기다 쓰레기를 버리냐고 뭐라고 한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쓰레기를 다시 집어들고 트렁크에 던졌다. 참 무안하다.  쓰레기를 남의 집 쓰레기통에 버린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처음에 이걸 저기다 버려도 될까라고 아내에게 걱정스런 투로 얘기했지만 집에까지 쓰레기를 가지고 가기 싫은 아내의 강요를 이기지 못했다. 돌아온 건 ‘쪽팔림’ 이었다.

3번정도 안좋은 일이 겹쳤으니, 불운한 날이 분명하다. 더러운 기분을 씻어내기 위해 영화관에서 ‘킹스맨 2’를 봤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오른쪽에 앉은 비매너 남녀가 떠들면서 팝콘을 처먹는다. 자리를 한칸 왼쪽으로 옮긴 뒤에야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는 먹을 때 소리나는 팝콘이나, 냄새나는 오징어 따위는 안팔았으면 좋겠다.

‘킹스맨2’ 신나는 액션 덕분에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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