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한강 (2014)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광주민주화운동은 나와는 객관적인 거리를 둔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 시절 광주에서 직접 그 일을 겪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소설이 위대한 것이 1인칭 시점으로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음.. 1인칭 시점이라는 건 정확하지 않다. 이 소설은 2인칭 시점이다. 소설의 1장 ‘어린 새’는 ‘너는…’ 이라고 2인칭 시점으로 얘기를 풀어나간다. 독특하다. 지금껏 2인칭 시점의 소설을 접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 이 소설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너’라고 부르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작가인가? 분명치 않다. 2인칭 시점은 3인칭 시점보다는 훨씬 1인칭 시점에 가깝다. 한 발 떨어진 시점이 아니라 반발자욱 가까이 다가간 시점이다. 그래서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 복판에서 어린 중학생 소년이 겪었던 일이 더 실제적인 슬픔으로 다가온다. 

2장 ‘검은 숨’은 죽어서 혼령이 된 주인공 ‘동호’의 1인칭 시점의 글이다. 그리고 3장 ‘일곱 개의 뺨’은 3인칭 시점이다.  이렇든 소설은 다양한 시점이 상존하는데, 신선하기도 했지만 읽어내려가기 불편한 점도 있었다. 뭔가 얘기가 마구 왔다갔다하는 느낌이랄까. 통일성, 완결성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장치겠지? 마지막 에필로그가 소설의 일부처럼 아주 길게 쓰여진 것도 특이하다. 작가 ‘한강’은 소설의 형식면에서 새로운 시험을 거리낌없이 시도하는 것 같다.  그녀가 시도한 형식들이 좀 불편하기는 해도, 그녀의 소설을 통해 나는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전에 느꼈던 역사적 사실의 ‘광주 민주화 운동’이 아닌, 바로 옆에서 보고 느낀 것 같은 실제성을 나에게 부여해 주었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역사적 죄인들에 관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친일파를 전혀 청산하지 못했다.  그 휴유증은 친일파가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지금까지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광주의 학살자인 전두환, 노태우는 대충 처벌받는 척하고 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역사의 반역자들은 끝까지 집요하게 처벌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 58p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p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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