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2009)

이 소설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작가의 말대로 매우 비현실적인 설정이며 아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일 거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작가의 역량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 비현실적인 얘기가 매우 현실적으로 들려온다는거. 문체는 참 다르긴 하지만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생각나기도 했다. 박민규만의 시적인 비유도 일품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그의 역량도 대단하다. 이로써 박민규의 소설은 다 읽었다.

2015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표절작임이 밝혀졌고, 작가도 사과를 했다. 여하튼 2010년 ‘더블’ 이후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지 않고 있는데 절필이라도 한 것일까?  얼마나 많은 부분을 표절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모든 소설들이 맘에 들었던 나로서는 작가를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모르겠다. 한 순간의 실수인가? 아니면 쓰레기인가? 그래도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228p

“찢어지게 가난한 인간의 방에 엠파이어스테이트나 록펠러의 사진이 붙어 있다면 다들 피식하기 마련이야. 하지만 비키니니 금발이니 미녀의 사진이 붙어 있다면 다들 그러려니 하지 않겠어? 즉 외모는 돈보다 더 절대적이야. 인간에게, 또 인간이 만든 이 보잘것없는 세계에서 말이야.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것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219p

“십 년이고 이십 년 후에 그 아이도 분명 어른이 될 거야. 그리고 돌아서서 주택청약자로서 아직 1순위가 아님을 무척이나 괴로워할 거야. 전혀 달라진 인간이라 본인은 믿고 있지만, 실은 똑같은 관념을 가진 나이 든 인간일 뿐이지. 그게 보편적인 인간의 이른바 성장이야.” -226p

“예전처럼 피곤하지도,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간을 때운다는 느낌으로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느새 그것이 전부인 삶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숨을 쉬고, 일을 하고… 귀챦아도 밥을 먹고, 견디고… 잠을 잔다. 그리고 열심히 산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삶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무료, 해도…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인간들은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고 나는 믿었다. 무료하므로 돈을 모으는 것이다… 무료해서 쇼핑을 하고,하고, 또 하는 것이다…큰소리 치는 인간도… 결국 독재를 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도… 실은 그래서 사랑에 실패한 인간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잘 살아보자고 모두가 노래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역시 삶이 아니라 생활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잠깐의 삶을 살다가

이제 생활을 하는 인간이 되어

나는 그 속에 섞여 있었다.” -300p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 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 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해왔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으며, 누가 뭐래도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지금 70년대의 냉전을 돌아보듯, 마치 지금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은 돈다 믿었던 중세의 인간들을 돌아보듯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만으론 <시시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니 그야말로 시시한걸. 이 시시한 세계를 시시하게 볼 수 있는 네오 아담과 네오 이브를 저는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가능성의 열쇠도 실은 우리가 쥐고 있습니다. 왜?

바로 우리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417p

“우리의 손에 들려진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 어떤 독재자보다도, 권력을 쥔 그 누구보다도…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강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로 대책없이 강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가 부끄러워하길 부러워하길 바라왔고, 또 여전히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인간이 되기를 강요할 것입니다.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절대다수야말로 이, 미친 스펙의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4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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