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오늘 본점에 다녀왔다. 한 부서에서 6년을 근무하고, 승진해서 1년 반동안 전혀 얼굴도 내비치치 않았다. 영업점에 나온 이상 본점 근처에 얼쩡거리는게 싫었고, 내 몸에 나도 모르게 붙어있는 본점 냄새를 떨어내고도 싶어서 일부로 찾지 않았다. 실은 12월 어느 한가한 날에 후배들 밥이나 사주고 동료들에게 인사나 할까 싶어 들르려 했는데, 오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때문에 강제로 불려갔다.

검사부 검사역은 취조하듯이 잘못을 따지고 들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검사부 놈들은 참 권위적이다. 항상 갑의 입장에서 을의 잘못을 따지고 추궁하면 되니까. 누군가에게 취조받는 느낌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오래전 무심결에 결재했던 서류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 일을 억지로 기억하며 자술서에 손글씨도 반성문을 적는건 치욕스럽다. 어제일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2년 6개월 전 일들이 기억날 리 만무하다. 전혀 생소한 업무를 인수인계 받고 난 후 거의 몇주만에 처음 결재한 서류들이다. 오히려 깨알같은 데이터의 오류를 집어내는 것 자체가 이상할 정도였다.

지나고나면 다 쉬어보이지만 검사부놈들, 네놈들이 막상 해보면 쉽지 않을거다. 마치 전지전능한 놈들마냥 이것도 체크 못했냐고 점잖게 묻는 놈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개같은 날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묻었던  몇 개의 지뢰 중 하나가 터진 것이다.

나는 선처를 바란다고 자술서에 적지 않았다. 그냥 나의 잘못을 인정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모르쇠로 일관한다고 안떨어질 징계가 아니다. 그리고 점검했던 안했던 내 손을 거쳐간 데이터고, 보고서이니 책임지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들에게 비굴하게 엎드린다고 그냥 넘어갈 놈들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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