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 박민규 (2006)

박민규의 글은 문체가 독특하다. 비유는 신선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난무하며, 문장의 호흡은 변칙적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특히 장편소설 ‘핑퐁’은 아마 도저히 영상으로는 풀어내기 불가능한 소설일 것이다. (만화로는 가능할까?)  영화로 만들면 그 매력을 10분의 1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왕따로서 상습적이 폭력에 시달리는 두명의 중학생이 겪는 현실의 사건과 아마도 신이나 조물주라고 생각되는 세끄라탱와 두 중학생 사이에 탁구를 메타포로 벌어지는 판타지가 절묘하게 엮여있는 이야기 구조다.  인간은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있는데, 물론 명확한 답은 없다. 그래서 더 허무한 것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구입해서 여러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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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전체적으로 버려진 벌집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얼룩말들이 달려오는 듯한 빗소리가 의식의 제방을 범람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깊은 잠의 강 속으로, 나는 깊이 끝없이 가라앉았다.

탄산수는 수백 마리 매미의 울음이 용해된 듯 강하고, 쏘는 맛이었다.

늙은 개의 오줌 같아진 스프라이트를 나는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스티로폼의 용기 곳곳에 순간 핏자국이 번져 있는 듯했다. 국물은 그래서 더 따뜻한 느낌이었다.

달에 착륙한 우주인처럼 한순간 진공의, 중력이 다른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고 선 기분이었다.

자신의 몸에 생긴 우물의 바닥이 느껴질 만큼이나, 나는 목이 말랐다.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 있을까? 학살을 자행한 것은 수천 볼트의 괴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 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한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서 생존해야해. 우리가 죽는다 해서 우릴 죽인 수천 볼트의 괴물은 발견되지 않아. 직렬의 전류를 피해가며, 모두가 미미하고 모두가 위험한 이 세계에서 – 그래서 생존해야 해. 자신의 9볼트가 직렬로 이용되지 않게 경계하며, 건강하게, 탁구를 치면서 말이야.

빙하기에 출몰한 세 마리 파충류를 본 듯한 얼굴로, 주방장은 다시 고개를 집어 넣었다. 잠시 후 냉면이 나왔다. 냉면은 응달에 앉은 도마뱀의 피부처럼 차고, 질기고, 시원했다.

끝없는 잠의 수면을 향해 번지점프라도 하듯 졸음이 쏟아져 내렸다.

3쎄트가 끝이 났다. 휴대폰의 전원도 꺼진 지 오래였고, 마음의 전원, 같은 것도 거의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모아이와 세끄라탱의 대화가 뭉툭한 몸통을 가진 곤충처럼 등뒤에 달라붙었다.

실은, 인류는 애당초 생존한 게 아니라 잔존해왔다. 만약 인류가 생존한 것이라면 60억 중 누구 하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대체, 왜,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영문도 모른 채, 말하자면 이곳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잔존해왔다.

정신이 결코 힘을 이길 수 없는 이곳에서

희생하는 인간이

이기적인 인간을 절대 당해낼 수 없는 이곳에서

이곳은 어디일까, 남아 있는 우리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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