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 (2015)

 

‘한국이 싫어서’ 라는 도발적이면서도 상투적인 제목의 소설은 장강명이 201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가서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와이프가 호주관련 유학원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 이 소설이 더 친근하게 다가 왔다.

이 책의 제목이나 내용이 다소 진부하긴 하지만 장강명 소설답게 무척이나 사실적이다.

모두들 한번쯤은 해외에 가서 사는 꿈을 꾸지 않을까? 나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보내준 유학 덕분에 미국 LA에서 1년 넘게 살아본 경험이 있다. 여행하는 것과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은 정말 다른 이야기다.  한국에서 평범했던 모든 일들이 외국을 나가면 하나의 모험이 된다. 

마트에서 장보는 것, 휴대폰을 개통하는 것,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면허를 따는 것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든 일상의 일들이 ‘모험’이 되는 것이다. 나는 단기간 ‘유학’을 목적으로 외국에서 살았지만 한국을 완전히 떠나서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고 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 소설은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주인공 ‘계나’의 모험담을 담고 있다. 

 

 

나는 물론 한국이 싫지 않다. 그런데 주인공은 왜 한국을 싫어할까?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 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도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11p

그래서 떠난 호주 이민길에서 처음부터 차에 치여 죽을 뻔한 경험을 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차들이 좌측통행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험이 시작되는 거다. 그리고 비행기에서부터 간단한 영어조차 들리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실 ‘계나’에게는 오래된 남자친구가 있었다. 재수해서 방송기자가 된 ‘지명’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하고 끈질기게 그녀의 호주행을 막아보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만류를 뿌리치고 호주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된다. 

아마도 호주에 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더라도 ‘계나’와 ‘지명’이 맺어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 이유는 신분차이. 지명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였고, ‘계나’의 아버지는 빌딩 관리인이었다. 그리고 ‘계나’가 처음으로 ‘지명’의 가족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지명’ 가족들의 냉담한 반응에 신분차이의 벽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결혼상대의 부모님이 재벌이 아니더라도 대학교수 정도의 지위라면 위축감을 가질 수 있다. 

‘계나’가 한국을 탈출하고 싶었던 건 결국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정해진 틀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위로 올라가고 싶어도 도구가 될 사다리를 움켜쥐기가 쉽지 않은 사회, 게다가 그런 사다리를 만들거나 움켜쥘 용기도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면 다른 것을 꿈꿀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예나야, 너 비행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빌딩 꼭대기에서 낙하산 메고 떨어지는 거랑, 어느 게 더 위험한지 알아?

….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리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 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 ” -124p

본인이 이미 낮은 곳에 위치하고 추락의 위험을 감지하고 있으니, 자연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다. 이제 추락하면 죽음인 것이다. 그런 절실함이 ‘계나’를 호주로 내 몰았을 것이다. 

호주로 간 ‘계나’는 이방인으로서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한다. 여러 명이 집을 나누어 쓰면서 거실에서 커텐을 두르고 생활하기도 한다. 쉐어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직장동료가 쉐어하우스 파티 중에 낙하산을 메고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엄청난 벌금을 물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살고 싶어. 물건 팔면서, 아니면 손님 대하면서 얼마든지 고개 숙일 수 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자존심이랄까 존엄성이랄까 그런 것까지 팔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 거야. 자존심 지켜 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또 여유가 생기면 사회를 위해 작더라도 뭔가 봉사를 하고 싶어.”-153p

한국에서는 ‘계나’가 바라는 이런 자존심을 지키는 삶이 쉽지 않다. 직장상사가 나의 자존심까지 배려하면서 일을 시킬까? 결코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직장에서 높이 올라가는 인간들은 잔인하고 혹독한 인간들이 더 많다. 확률적으로.

“똑같이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난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 내가 호주에서 산다고 해서 죽기야 하겠어? 기껏해야 괜찮은 남자를 못 만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사는 거지. 그런데 호주에서는 알바 인생도 나쁘지 않아. 방송기자랑 버스 기사가 월급이 별로 차이가 안 나.” -161p

이게 주인공이 바라는 삶이고 환경이다. 주체적인 삶.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면서 살아나가는 삶. 이런 삶에는 그 밑바탕이 되는 환경이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신분적으로 양극화 된 사회에서 버스 기사는 방송기자를 뛰어 넘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나 신분적으로나.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들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갑자기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 하더라고. 내가 왜 한국에서 살면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 나한테는 자산성 행복도 중요하고 , 현금흐름성 행복도 중요해.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미연이나 은혜한테 이런 걸 알려 주면 좋을 텐데. 걔들은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고 있어. 시어머니나 자기 회사를 아무리 미워하고 욕해 봤자 자산성 행복도, 현금흐름성 행복도 높아지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집 사느라 빚 잔뜩 지고 현금이 없어서 절절 매는 거랑 똑같이 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해 주잖아.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 186p 

정말 호주는 이런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 나라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이런 문제들이 덜 할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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